눈, 물
여자는 어느 날 눈 아이를 낳았다. 여자의 체온에 녹아버릴까 봐 눈 아이를 안아 줄 수도 없다. 녹아 버린 아이의 손가락을 눈으로 만들어 붙여 주고 옆에서 함께 잠이 든다. 민소매에 맨발인 그녀는 아이를 위해 눈으로 담을 쌓아 주었다. 어느 날 광고 전단을 발견했다.
- ‘언제나 겨울’ , 선착순 무료체험-
여자는 ‘언제나 겨울’이라는 아이를 살릴 장치를 구하러 홀로 도시로 간다. 그런데 배경이 도시로 전환되자마자 책 종이의 질감이 반사되는 재질의 매끈한 종이로 바뀐다. 화려한 도시를 표현한 것일까?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은 장마다 종이의 소재, 사용한 색의 수 같은 것에서 디테일한 차이가 난다. 또 그걸 감지한 사람에게 이유가 뭘까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여자는 ‘언제나 겨울’을 파는 곳을 찾아왔다. 하지만 이미 무료 체험은 끝이 났다. 매장 앞 광고판에는 ‘모두가 가질 수 있어요’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여자는 그걸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절박했던 그녀는 돈을 구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알바를 하는 장면에서 ‘귀여운 인형 탈을 쓰고 일을 하는구나’ 라고만 생각 하다가 알게 된게 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과 우유를 홍보하거나 팔아 사람들이 메탄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소를 기르게 해야했고, 역시 대기 오염을 일으키는 에어컨을 켜게 하는 등등의 혼자 하는 잡일만을 했다. 선택권은 없는것 같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겨울 상자를 사야 한다.
맨발이 새까매지도록 한 일들은 슬프게도 세상의 온도를 올렸다. 일을 하며 흘린 땀은 초록색 잎사귀를 자라나게 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점점 죽이는 셈이다.
아무리 일을해도 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자는 끝내 ‘언제나 겨울’을 구해 겨우 가지고 돌아온다. 눈아이가 있던 자리에는 눈 아이 대신 눈 아이가 녹은 물이 있었다. 여자는 고인 물을 모아 ‘언제나 겨울’ 상자에 넣고 손으로 만져도 보고 입을 맞춘다.
소중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외롭게 안간힘을 썼어도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어떻게 가져왔는지까진 자세히 적진 않았지만 여자가 결국 원하던 것을 가지고 왔다는 결말에서 본다면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안녕달 작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언제나 겨울‘ 이 관 같다고 했다. 읽다보면 눈아이가 어쩌면 장애아 혹은 병든 지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독자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은데 글쎄 모호하다. 해석하기 나름 같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여자는 표정을 숨기고, 맨발로 홀로 고군분투했다. 글자가 얼마 되지도 않는 책이지만 무거운 내용에 마음이 아프다.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손을 내밀어 눈송이를 잡으려 하면 눈은 녹아내렸다. 반짝이던 설경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고 땅은 얼룩진 물에 질척였다. 잔인하게 자라는 초록.
그 앞에서 꺼져 가는 계절을 쫒아 초록빛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마지막 눈송이를 상상했다.
안녕달
<수박 수영장>,<할머니와 여름휴가> , <왜냐면....><메리>, <안녕>, <쓰레기통 요정>, <당근 유치원>, <눈 아이>를 쓰고 그렸습니다.
추천사
지키는 사랑은 왜 언제나 그렇게 어려운 걸까? 모든 것을 망치기만 하는 세계에서 무언가를 지키며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과 이 책을 읽고 싶다. 어떤 통증은 무뎌진 상태의 우리를 깨우기 위해 필요하다. 쪽마다 아픈 이 책을 당신에게 안기고 싶은 것은 그래서이다.
-소설가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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