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아이
어느 날 학교에 가던 꼬마는 눈사람이 뽀득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의아한 일이었지만 지나치고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꼬마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눈사람은 여전히 꿈틀대며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눈사람에게 다가간다.
꼬마는 무슨 생각인지 멈춰앉아 눈사람의 손을 만들어 붙여주고 눈 코 입 귀를 손가락으로 그려주었다. 입이 생긴 눈사람은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천진하게 연신 ”우아 우아“하고 기쁜 탄성을 질렀다.
눈아이가 된 눈사람과 꼬마는 친구가 되었다. 눈을 뭉쳐 만든 눈빵을 나누어 먹고 한켤레 뿐인 빨간 장갑을 나눠 꼈다. 손을 잡고 토끼를 쫒아 눈 쌓인 언덕을 오르는 동안 쌓인 눈만큼 눈 아이의 덩치도 자라났다.
꼬마의 책가방으로 썰매를 만들어 함께 놀던 눈아이가 언덕에서 넘어져 굴러 떨어졌다. 꼬마는 눈아이의 몸에 붙은 낙엽을 떼어주고 후후 불어 몸을 정리해 주었다.
“괜찮아?” “응.”
눈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왜 울어?”
눈아이가 말했다.
“따뜻해서.”
참 이상한 말이었다.
겨울은 영원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들판의 눈은 점차 녹았고 눈 아이도 점점 작아졌다. 몸이 녹고 진흙이 섞여서 눈아이는 자꾸 더러워졌다. 눈아이는 강아지만큼 작아졌다. 작아진 친구를 책가방 썰매에 태우고 달리던 꼬마가 넘어졌다. 가방에 타고 있던 눈아이도 바닥에 떨어졌다.
“괜찮아?”
꼬마는 말없이 주변의 조금 남은 더러운 눈을 모아 부서진 눈아이의 몸에 덧대 붙여주었다.
“내가 녹아서 더러운 물이 돼도 우리는 친구야?”
“응.”
꼬마와 눈아이는 어느 나무 아래 아주 조금 남은 눈 위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눈아이의 얼굴은 녹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눈아이는 사라졌다. 꼬마는 눈아이와 놀던 장소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지만 낙엽이 지도록 시간이 흘러도 눈아이를 볼 수 없다.
다시 겨울이 왔다.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꼬마는 빨간 장갑을 낀 눈아이를 알아 볼 수 있다.
마치며
시간은 우리에게 이별을 감당하게 하지만 이별이 꼭 영원한 단절은 아니다. 눈이 오면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안녕달 작가의 눈, 물이라는 작품에서도 눈아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눈, 물의 눈아이가 필사적으로 지켜야하는 어두운 눈아이라면 이 책의 눈아이는 밝고 다정한 눈아이다. 따뜻하게 대해 주니까 울어버리는.
눈아이 발표 당시 눈, 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가제목은 동명으로 눈아이였던 것 같다. 출판된 책을 둘 다 읽었다. 눈, 물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면 눈아이는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뭐가됐든 나는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을 좋아한다. 잔잔하고 환상적인 동화를 좋아하고, 색연필로 단순하게 그린 기교없는 그림을 좋아한다. 작품 해석 좋아하는 어른인지라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도 좋아한다.
인터뷰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의외로 작가 본인은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눈을 그려야 되니까 눈이 오면 밖에 나가서 눈아이도 만들고 자료 사진을 찍으려고 설산에도 올랐다고 했다. 설산이 황홀해 보일 때까지 자료를 모았다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눈아이는 매년 겨울이면 생각날 만한 따뜻한 책이다.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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